바닷물이 빠진 뻘 위로 늦가을 햇볕이 가득하다. 저만치서 밀물 떼가 아장아장 겹겹이 밀려들어온다. ‘어디 갔었니? 너희도 멀리멀리 달아났다가 반가운 때가 되어 돌아오는거니?’ 밀물떼가 돌아오는 모습은 명랑하다.우리 일행은 이른 아침 홍성 남당항 선착장 매표소에 앉아 죽도 가는 배를 기다렸다. 휴일을 맞아 섬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고 가는데 육지에만 들러붙어 사는 나에게 섬과 배는 신기한 풍경이다.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15분쯤 들어가 섬에 닿았다. 나무로 만든 둥근 길을 천천히 걸었다. 네 등분으로 나눈 사과를 베어 물며
논리학의 오류 중에 ‘후건 긍정의 오류’가 있다. 기호로 나타낸다면 이렇다. “①P이면 Q이다. ②Q이다. ③그러므로 P이다.” 언뜻 보면 맞는 말 같아 보지만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예를 들어보자. “①감기에 걸리면 기침이 나온다. ②기침이 나온다. ③그러므로 감기에 걸린 것이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 기침이 나온다고 모두가 감기가 원인일까? 그렇지 않다.감기가 아닌 다른 질병 때문에도 기침이 나올 수 있다. 결과가 같다고 모두 원인이 같다는 보장은 없다. 심각한 질병에 걸려서 기침이 나오는 데도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 보
한국인의 삶에 가장 깊이 스며든 물고기는 무엇일까? 다소 이견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많은 사람이 조기, 명태 혹은 멸치를 떠올리지 않을까. 하지만 이렇게 친숙한 물고기임에도 조명치(조기, 명태, 멸치)를 주제로 한 박물관은 쉬이 상상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지난 20일, 평택남부문예회관에서 열린 제14회 평택 박물관 포럼, ‘해양인문학의 현장성과 조명치 특별전의 이해‘는 작은 흥미를 불러일으키며 시작되었다. 강연이 시작되자 강사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기록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닌,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
본격적인 가을의 서막이 열리고 현란할 정도로 아름다운 단풍들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너무나 온화하고 적당한 일교차 때문인지 매우 아름답게 단풍이 물들어 가고 있다. 오래도록 떨어지지 않고 멋진 풍광을 보여 주었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그러한 우리들의 속셈을 알 리가 없는 나무들은 아름답지만 어절 수 없이 내려놓아야 하는 운명도 알고 있다. 인간의 욕망이 자연의 이치를 거스를 수는 없기에 순순히 놓아 주어야 마땅할 것이지만 그래도 내내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그래서 그런지 어쩌다 서둘러 떨어진 낙엽들을
당연한 내일은 없다오늘 안녕한 것은 당연하지 않다. 어제 별일 없었고 안녕했으니까 오늘도 당연히 안녕할거고 내일도 안녕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은 참 용감하다. 해마다 보험공단에서는 국민들에게 건강검진의 기회를 준다. 작년에 아무 문제없었으니 올해도 무사할 것이 보장된다면 해마다 반복해서 건강검진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매해 건강 검진하라는 연락이 연초부터 왔었다. 그런데 정작 검진을 받는 때는 연말이 닥쳐와서이다. 마치 방학을 맞은 아이가 방학 막바지에 가서야 바빠지는 것같다.
최근 평택시 인권센터 설립과 관련한 이야기가 지역 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평택시에 평택시민인권센터(이하 인권센터)를 설립하고 시민의 기본적 인권보장 및 증진을 위해 상임·비상임 인권옹호관 5명 이내를 두어 운영한다는 내용이다.그러나 일각에서는 평택시 지역 특성에 맞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된다.평택시 인권센터의 역할이 공공기관에만 한정돼 있을뿐더러, 현재 평택시 감사관과 시민옴부즈만과 겹치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인권센터 설립의 근거는 최근 평택시의회에서 가결된 「평택시 인권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인데, 해당 조례
성악을 하는 동생의 집들이 초대가 있었다. 탁 트인 통 유리창 눈 쌓인 논이 보이는 고덕 신도시 풍경을 보며 도심 속 절경과 맞선 설레고 멋진 기분이 드는 집이다. 그리고 위풍당당 가오(폼의 속된 말)에 놀란다.아무 것도 없던 맨땅 고층건물이 들어서고 맨질맨질 길이 닦여도 신도시 위력은 무채색 가운을 걸친 이구아나처럼 낯이 설고 삭막하며 정이 가지 않는다.모처럼 모인 자매들의 자리 더덕 담금주를 마시면서 얼근해지니 동생에게 노래를 청한다.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서 긴장하며 노래 부르던 모습이 아닌 순수한 자리여서인지 화기애애 최고조다
요한계시록에는 ‘흰 옷’을 입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이기는 자는 이와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 3:5).어떤 이단 사이비 종파들에서는 이 말씀들을 근거로 공식적인 집회뿐 아니라, 심지어 일상생활에서도 흰 옷을 입도록 강요하는 일도 있다. 이것은 성경의 본래 의미를 저버리고 문자적으로 지키려는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다.흰 옷은 요한계시록에서 여러 상징적인 이미지 중 가운데 하나이며, 성도의 현재와 미래의
알권리는 국민 개개인이 정치·사회 현실 등에 관한 정보를 자유롭게 알 수 있는 권리이다.이러한 알권리를 헌법에 명시한 국가는 단 한 곳도 존재하지 않는다. 해당 단어가 추상적인 개념으로 불리는 이유다.그러나 대한민국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공개법)」을 제정해 어느 정도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있다.언론이나 개개인 누구나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공공기관이 보유ㆍ관리하는 정보를 요청할 수 있으며, 해당 정보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 등을 위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한다.최근 평택시 모 부서에서
호사다마(好事多魔)는 중국 고전 소설 에 나오는 말로, 좋은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과 역경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말이다.개인적으로 순순히 풀리는 여러 가지 일이 있었고 또한 그 기쁨에 들떠 있었다. 물론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운이란 것도 무시하지 않는다. 주어진 만족한 결과에 한참 취해 있을 때 건강에 이상 적신호가 왔다. 소화기내과와 정형외과 두 군데를 오가며 동시에 검사를 하고 먼저 정형외과 입원과 수술이 진행되었다. 몇 년을 엄지와 검지 중앙 관절 부분에 서리태 콩만큼 커진 혹이 양성이긴
‘N’이라는 자매가 있다. 20여년 전 내가 부목사로 부임해간 교회의 청년이었다. 그 자매의 가정에는 오랜 시간 깊은 상처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알콜중독자였다. 성장기에 줄곧 보아온 아버지는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와서 온갖 행패를 부리는 그런 아버지였다.심지어 고3 수능 시험을 치르기 전날에도 술에 취해 들어와 밤새도록 온갖 소란을 벌이는 바람에 다음날 울면서 시험장에 가야 했다. 자매는 간호대학에 입학했다.청년부를 담당하고 있던 내가 그 자매를 만났을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술에 취해서 길바닥에 쓰러져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관내 청년정책과 관련해 암울한 소식들이 연이어 들려오고 있다.지난 4일 시에서 발표한 ‘15세 이상 시민대상으로 실시된 행복실태 조사’에 따르면, 시민들의 경제·고용과 문화·여가 만족도가 10점 만점의 각각 5.77점과 5.98점으로 낮았으며, 전체 응답자중 24.6%의 해당하는 19~39세 청년층이 일자리 부족으로 구직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또한, 시 관계자는 “평택시가 지방세 수입 감소로 인해 내년 예산 감축이 불가피하다”며, “현재 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청년정책 사업들이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해당 시 관계자는
작열하던 유월의 뙤약볕을 이겨내고 굳건하게 뿌리를 지켜온 가을 고들빼기를 채취해 나물로 무쳐 내고 있는 아내 곁에서 한참을 음미 한다물론 맛을 음미 하고 있지만 입안 깊숙이 머금고 지그시 눈을 감아 힘겨웠던 지난여름을 생각하며 왼편 가슴을 한번 쓸어내리다 뭉클했던 순간들을 기억해 내곤 쓴 침과 함께 한 모금 꿀꺽 삼켜본다.좀처럼 꺾이지 않을 것 같던 여름의 무더위도 지나갔다.사라지지 않을 듯 했던 아찔한 순간들도 기꺼이 자취를 감추었고 서늘하다 못해 쓸쓸하기까지 한 가을 기운이 완연 하다.마치 입 안 가득 퍼진 쓰디쓴 고들빼기 맛이
큰 빚을 지고 고통받는 사람이 있었다. 고리 사채까지 썼다가 이제는 교묘한 불법 추심(不法 推尋)으로 생명의 위협받는 받는 상황이 되었다.그런데 어떤 부자가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빚을 대신 갚아 주었다. 심지어 다 변제되었음에도 사채업자로부터 당할 수 있는 부당한 일로 고통당하지 않도록 전문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게 조치해 주었다. 참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하지만 빚을 청산받은 사람은 이제 마이너스의 삶에서 0으로 돌아온 것일 뿐이다. 제대로 살아가려면 0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플러스가
지난 1일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지 7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한미동맹의 법적 기반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은 6.25 전쟁 직후인 1953년 10월 1일 워싱턴 D.C.에서 변영태 한국 외무장관과 존 포스터 덜레스 미국 국무장관이 조인하여, 1954년 11월 18일 발효한 대한민국과 미국 사이의 군사동맹에 관한 조약이다.6.25 전쟁의 포화를 뚫고 맺어진 한미동맹은 올해로 70주년을 맞이했으며, 7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무수히 많은 국내외 정치 경제변화 속에서도 굳건히 그 약속을 지켜나가고 있다.북한의 도발을 차단하고 한반도의 안전
나의 창은 동쪽으로 열려 있어 달과 별을 바로 마주쳐 볼 수 있다.새벽 4시에는 밤하늘의 별들이 지난 여름보다 산뜻하게 뜬다. 뜨거운 계절을 견디어 건너온 조금은 시큰해진 몸 위에 뜬 하늘의 빛이다.추석 지나 그믐달과 두뼘 거리로 따라다니는 금성, 샛별! 그 선명한 빛과 위치가 놀라워 눈이 환해진다.발음도 서늘한 시월이다. 소슬바람이 분다. 들판에는 말라 부서지는 풀꽃들의 냄새, 구절초 하얀 꽃무더기에서 나오는 쌉사래한 향기, 꽃밭엔 진보라 마편초가 피어 가을만큼 고즈넉하다.처음 시를 만진 것이 시월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교실,
르호보암은 지혜로운 판결로 유명한 솔로몬왕의 뒤를 이어 왕위를 물려받았다. 솔로몬은 40년 통치 기간 중 20년을 성전과 왕궁 건축으로 시간을 보냈다. 거대한 건설공사에 백성들은 오랜 기간 힘든 부역을 감당해야 했다. 솔로몬이 죽고 그 아들이 왕위에 오르기 직전,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대표들이 르호보암을 찾아왔다. 선대 왕인 솔로몬이 백성들에게 부과했던 노역의 짐을 조금만 가볍게 해준다면 기꺼이 왕에게 충성하겠다고 했다(왕상 12장). 하지만 르호보암은 백성들의 대표들에게 더 혹독하게 그들을 대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내 아
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가 돌아왔다. 추석은 한 해 농사를 끝내고 오곡을 수확하는 시기다. 그래서 추석은 명절 중에서도 가장 풍성한 명절로 꼽힌다.이번 추석은 연휴에 주말이 겹쳤음에도 불구하고 10월 2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돼 시간적 여유를 느낄 수 있는 명절이 될 전망이다. 모처럼 가족들과 정담을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 같다.그러나 이 같은 풍성함을 기원하는 마음과 달리 국민들이 느끼는 경기는 여전히 싸늘하다. 추석을 앞두고 각종 물가지표에 빨간불이 켜져 추석 성수품을 마련해야 하는 서민들의 부담이 날로 커져가고 있다
상현달이 부드럽고 은은하게 퍼지는 밤이다. 달이란 이름은 얼마나 고운가.지구에서 달을 바라볼 때 육안으로 보이는 것이 달토끼, 일명 방아 찧는 토끼 형상이다. 어쩌다 무심히 보아도 그리 보인다. 달의 표면은 크레이터crater, 즉 움푹 파이거나 솟거나 하며 모양도 제각각인 지형으로 사전적 의미를 빌려 말하자면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위성이며 우주적 생명력을 가지게 하는 종교적 상징도 있다.시골 태생이라 청정하늘의 원대하고 거대한 우주에 휩싸여 살았다. 별이 쏟아지는 밤을 보고 자랐으니 정서적 축복이 가득했다. 별을 세는 일은 무의미
정형외과에 오는 여러 환자를 오랫동안 유심히 지켜보아 왔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마도 조금은 ‘윤색’(潤色)한 감이 없지 않다. 병원에 올 때 환자들은 대부분 크고 작은 통증으로 찡그린 표정이라고 한다. 손가락 하나가 아파서 온 사람이 찡그리며 들어왔다. 그런데 아예 손가락 전체를 쓸 수 없는 사람을 보고서 아픈 내색을 멈추었다고 한다.다섯 손가락 전체를 다친 사람은 병원에 찡그리며 들어오지만 두 손 다 쓰지 못하는 사람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는단다. 두 손 다 못 쓰는 사람은 아예 상반신 마비가 된 사람을 보고 위로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