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에는 ‘흰 옷’을 입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이기는 자는 이와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 3:5).어떤 이단 사이비 종파들에서는 이 말씀들을 근거로 공식적인 집회뿐 아니라, 심지어 일상생활에서도 흰 옷을 입도록 강요하는 일도 있다. 이것은 성경의 본래 의미를 저버리고 문자적으로 지키려는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다.흰 옷은 요한계시록에서 여러 상징적인 이미지 중 가운데 하나이며, 성도의 현재와 미래의
‘N’이라는 자매가 있다. 20여년 전 내가 부목사로 부임해간 교회의 청년이었다. 그 자매의 가정에는 오랜 시간 깊은 상처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알콜중독자였다. 성장기에 줄곧 보아온 아버지는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와서 온갖 행패를 부리는 그런 아버지였다.심지어 고3 수능 시험을 치르기 전날에도 술에 취해 들어와 밤새도록 온갖 소란을 벌이는 바람에 다음날 울면서 시험장에 가야 했다. 자매는 간호대학에 입학했다.청년부를 담당하고 있던 내가 그 자매를 만났을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술에 취해서 길바닥에 쓰러져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큰 빚을 지고 고통받는 사람이 있었다. 고리 사채까지 썼다가 이제는 교묘한 불법 추심(不法 推尋)으로 생명의 위협받는 받는 상황이 되었다.그런데 어떤 부자가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빚을 대신 갚아 주었다. 심지어 다 변제되었음에도 사채업자로부터 당할 수 있는 부당한 일로 고통당하지 않도록 전문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게 조치해 주었다. 참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하지만 빚을 청산받은 사람은 이제 마이너스의 삶에서 0으로 돌아온 것일 뿐이다. 제대로 살아가려면 0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플러스가
르호보암은 지혜로운 판결로 유명한 솔로몬왕의 뒤를 이어 왕위를 물려받았다. 솔로몬은 40년 통치 기간 중 20년을 성전과 왕궁 건축으로 시간을 보냈다. 거대한 건설공사에 백성들은 오랜 기간 힘든 부역을 감당해야 했다. 솔로몬이 죽고 그 아들이 왕위에 오르기 직전,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대표들이 르호보암을 찾아왔다. 선대 왕인 솔로몬이 백성들에게 부과했던 노역의 짐을 조금만 가볍게 해준다면 기꺼이 왕에게 충성하겠다고 했다(왕상 12장). 하지만 르호보암은 백성들의 대표들에게 더 혹독하게 그들을 대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내 아
정형외과에 오는 여러 환자를 오랫동안 유심히 지켜보아 왔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마도 조금은 ‘윤색’(潤色)한 감이 없지 않다. 병원에 올 때 환자들은 대부분 크고 작은 통증으로 찡그린 표정이라고 한다. 손가락 하나가 아파서 온 사람이 찡그리며 들어왔다. 그런데 아예 손가락 전체를 쓸 수 없는 사람을 보고서 아픈 내색을 멈추었다고 한다.다섯 손가락 전체를 다친 사람은 병원에 찡그리며 들어오지만 두 손 다 쓰지 못하는 사람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는단다. 두 손 다 못 쓰는 사람은 아예 상반신 마비가 된 사람을 보고 위로받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한 왕으로 손꼽히는 아합왕에게 ‘오바댜’라는 신하가 있었다. 그는 ‘왕궁맡은 자’였다(왕상 18:3). 궁궐 내의 모든 살림을 맡겼다면 왕의 신임이 두터웠을 것이다. 그런데 오바댜는 하나님을 지극히 경외하는 자이기도 했다. “아합이 왕궁 맡은 자 오바댜를 불렀으니 이 오바댜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라”(왕상 18:3). 아이러니다.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사람이 어떻게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죽이도록 사주한 아합왕 밑에서 충실하게 일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만일 그가 정말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이었
“이른 벼는 맛이 없어” 어느 성도의 가정 심방을 마치고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90이 넘은 장로님이 하신 말씀이다. 추수한 벼를 실은 트럭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무심한 듯 혼잣말처럼 툭 던지셨다. 함께 타고 있던 70대 권사님도 맞장구를 치신다. “그래 맞아요. 뭐든 늦은 게 맛나지, 이른 것은 맛이 없어” 정말 그러냐고 되묻는 나의 말에, 같이 타고 있던 60대 장로님도 그 말이 맞다고 한다. 농사로 잔뼈가 굵으신 어르신부터 모두 다 맞다고 하니 경험에서 나온 그 말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터다. 아마 가을의 따가운 햇빛을 충
다윗 왕이 나이 많아 늙었을 때 일이다. 그는 노환(老患)으로 인해 더 이상 국정을 돌볼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을 성경은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왕상 1:1). 몸이 쇠약하여 줄곧 침실의 침상에서 머물러 있었다. 몸의 온기가 떨어진 것은 노쇠했다는 증거인데, 단순히 나이가 많아서라기보다 그의 젊은 날에 겪었던 심한 고생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다윗은 젊은 날 망명 생활과 숱한 전쟁 등으로 인해 온갖 풍파를 겪었다. 말년에는 내부적으로 집안의 불화, 반란, 살인, 음모 등으로 인해 그의
누가복음 24장에는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두 제자에 대한 기록이 있다. 그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당해 죽게 되자 기대했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고 여기고 돌아가는 중이었다.가는 도중 부활한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셨지만, 그들은 알아보지 못했다. 성경은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부활의 주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설명한다(눅 24:16). 무엇이 그들의 눈을 가렸던 것일까? 부활의 몸이 이전과 동일하면서도 사뭇 달랐기 때문일 수도 있고, 십자가에서 그렇게 무력하게 처형당한 예수님이 다
이번 여름은 조금 기이했다. ‘기상이변’이라는 이제는 낯익은 단어만으로 면역되지 않은 이상한 여름을 보냈다. 기나긴 장마와 한반도 중앙을 가로지른 태풍, 그리고 이젠 꺾일 것 같은데 꺾이지 않는 무더위까지.늦더위의 맹위가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우리나라 대부분 지역에 폭염주의보가 내리기를 반복한다. 기나긴 장마와 태풍이 있어서였을까? 쨍하고 더운 지난 며칠 전 투쟁적으로 울어대는 매미들 소리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저들이 여름 내내 울지 못한 아쉬움을 한 번에 달래려는 것 같았다.같이 그 소리를 듣고 있던 큰아들이 말했다. 매미
예수님이 들려주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세간에도 잘 알려져 있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어떤 사람이 여행 중 강도를 만났다. 강도들은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다 빼앗고, 그를 때려서 거의 죽게 만들어 놓고 달아났다. 마침 한 유대인 제사장이 지나가다 쓰러져 있는 그를 발견했지만 얼른 피해서 지나갔다. 한 레위 사람도 그대로 지나가 버렸다. 어떤 사마리아 사람이 그곳을 지나가다가, 그를 발견하고 측은히 여겨 응급처치를 해주었다. 또 자기가 타고 온 나귀에 태워 근처 여관으로 데려가서 밤새워 보살펴 주었다. 다음날, 그 사마리아
사람의 걸음걸이를 나타내는 말이 여럿 있다. ‘아장아장’은 걸음마를 뗀 아이가 느리게 이리저리 걷는 모양을 말한다. ‘사뿐사뿐’이 있다. 소리가 나지 않을 정도로 매우 가볍게 발을 내디디며 걷는 모양새다.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새색시의 고운 걸음을 떠올리게 한다.‘또박또박’은 가볍고 분명한 발걸음 소리를 내며 일정한 속도로 걷는 소리다. 하이힐을 신은 여성의 구두 소리를 연상시킨다. 조금 더 강한 소리인 ‘뚜벅뚜벅’은 남성의 구둣발 소리에 가깝다. 아니 왜 여자는 ‘또박또박’이고 남자는 ‘뚜벅뚜벅’이지? 그것은 고정관념이고 성차별적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선지자 중 요나는 매우 특이한 사례다. 요나는 ‘반항하는 선지자’, ‘사명을 뒤로하고 도망치는 선지자’로 불린다. 요나는 앗시리아의 큰 도시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사명을 받았다(욘 1:1-2). 그런데 그 나라는 이스라엘에게 군사적으로 위협이 되는 적대 국가였다. 그들에게 전하라는 하나님의 메시지는 겉으로는 심판의 메시지였지만, 임박한 심판을 받지 않기 위해 회개하라는 메시지였다.요나는 알았다. 하나님은 아무리 악한 자라도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서면 언제든지 용서하시는 풍성한 자비의 하나님인
요즘 날씨가 낯설다. 우리가 그동안 가져왔던 자연의 질서에 대한 예상 범위를 점점 넘어가는 느낌이다. “시골이고 도시고 안전한 곳이 없다.” 이번 우리나라의 폭우 피해에 대한 방송을 보면서 가족들이 한 말이다. 시골은 시골대로 산사태나 둑이 무너지고 하천이 범람하는 등 여러 가지 사고로 심한 생채기를 남겼다. 도시도 안전하지만은 않다. 둑과 제방이 무너지거나 지하차도가 물에 잠겨 수많은 인명피해를 냈다.곳곳의 도로나 철로가 유실되어 자동차가 못 다니고, 기차가 못 다닌다. 제방이 무너져 마을 전체가 물에 잠긴 곳도 있고, 산사태로
그 목사님과의 첫 만남은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처음 부교역자로 부임한 교회의 담임목회자였다. 구체적인 사정도 전혀 알지 못한 채 갔던 그 교회는 오랜 시간에 걸친 내부 갈등으로 상처가 많은 곳이었다.나름 열정을 다해 맡은 부서를 섬기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오랜 시간 받은 상처들 때문이었는지 교사들이나 청년들은 쉽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다. 비협조적이고 냉랭한 분위기에서 이방인처럼 몇 달을 보내면서 심한 무력감에 시달렸고, 급기야 그곳을 사임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무리 그래도 1년을 채우는 것이 도리
서광원이 쓴 (흐름출판)에는 95세 할아버지의 회고록이 나온다. 95세 할아버지가 30년 전 65세의 나이로 은퇴했을 때는 매우 자랑스럽고 당당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95세의 생일에 깊은 후회감이 몰려왔다.그는 퇴직하면서 이제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라는 생각했다. 어떤 목표도 희망도 꿈도 없이 살았다. “이제 살면 얼마나 살겠다고”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나이 95세로 보면 3분의 1에 해당하는 30년의 기나긴 세월을 별 의미 없이 그렇게 흘려보낸 것이다. 자신이 퇴직할 때 앞으로 30
인터넷 포털 네이버에는 평택 시민들 중심으로 인근지역까지를 아우르는 인터넷 카페 모임이 있다. 6만 명에 근접하는 회원을 가졌으니, 평택을 대표하는 카페라 할 만하다. 유용한 정보 교류와 회원들끼리의 친목 도모가 활발한 카페다.종종 그 카페에는 무료 나눔을 한다는 글이 올라온다. 그런데 어떤 회원이 무료 나눔이 있을 때마다 선수를 쳐 기회를 독차지하는 바람에 회원들이 문제 삼은 적이 있다. 여러 사람에게 골고루 기회가 제공되어야 하는데, 그것을 독점하다시피 한 것에 대한 지적인 셈이다.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아주 당연하다
필자는 초등학교 4학년까지 시골에서 학교에 다녔다. 그때 공부와는 아예 담을 쌓고 살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숙제해간 기억이 별로 없다. 무엇에 정신이 나간 것일까? 노는 것 외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밤늦게까지 밖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가는 것이 일과였다.오죽하면 화가 난 아버지의 심한 매질로 아파서 학교를 빠지기도 했다. 3학년과 4학년 연거푸 담임이셨던 여선생님은 나에게 화가 나서 퇴학시키겠다고 협박했던 기억이 있다.좀 불량했던 동네의 형들 따라다니면서 가게 물건을 훔치기도 했고, 소위 비행 청소년이 할만한 짓들을 초등학
‘친밀’(親密)은 아주 친하고 밀접한 것을 말한다. “가까운 사이, 친한 사이”와 맥을 같이 한다. 이 말은 관계적이다. 사람 사이가 아닌 것에서 이 단어를 사용할 때조차 그렇다.“우리는 잘 아는 사이야!”라는 말에는 보통 오랜 시간 알아 왔으며, 서로 신뢰 관계가 형성되었음이 묻어난다. 익숙함, 그리고 편안함이 이 말에 숨겨져 있다. 그런데 때로 그런 익숙함, 가까움이 오히려 상대방을 소홀하게 대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굳이 의식하고 그런 것이 아니지만, 언제나 내 입장을 다 이해해 줄 것처럼, 그 사람은 항상 내 편인 것처럼
죽음을 묵상하는 것은 비관적인 정서를 자극하지만, 신자들에게는 큰 영적인 유익이 있다. 성경은 잔칫집보다는 초상집에 가라고 한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전 7:2). 초상집은 인생의 끝을 생각해보게 한다.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되니, 산 자는 이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