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성리학에 기초하여 예의를 중시하며 살아온 겨레 이다. 법이 없이도 살 사람이란 의미는 예의가 중시되던 시대에 구태여 법으로 제재를 가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다. 그만큼 예의가 곧 법도였기 때문일 것 이다.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서로를 배려하며 갖추어야할 덕목으로 삼강오륜을 귀감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지만 오늘날의 사회는 삼강과
바닷물이 빠진 뻘 위로 가을 햇볕이 가득하다. 저만치서 밀물 떼가 아장아장 겹겹이 밀려들어온다. ‘어디 갔었니? 너희도 멀리멀리 갔다가 때가 되어 돌아오는거니?’ 밀물떼가 돌아오는 모습은 명랑하다. 우리 일행은 이른 아침에 출발해 홍성 남당항 선착장 매표소에 앉아 죽도 가는 배를 기다렸다. 휴일을 맞아 섬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고가는데 육지에만
사랑이라는 아주 소중한 말이 있다. 사랑이란 그 말은 광범위한 뜻을 가지고 있기에 무엇으로 단정을 한다는 것은 얕은 생각이다. 사랑은 변하는 속성을 가진 것이라 거래인 경우가 많아 진리라고 볼 수 없다. 좋을 때는 웃다가 헤어질 때는 우는 사랑을 예시로, 동양에서 말하는 인과 자비라는 사상이 사랑과 통하고 그리스도 예수는 참된 사랑은 자기희생으로 온다고 했
세상은 넓고 하늘은 높으며 바다는 깊다. 넓고 깊은 자연 속에 기거하는 모든 생명들은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동 식물을 막론하고 모든 우주 만물이 그러할 것이다. 특히나 그 속에 사람의 존재란 위대하기에 더욱 그러할 것 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 인간사회의 공식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다가 땅으로 돌아간다. 그러기에 우리가 밟고 살아가는 땅의 명칭 또한 다양
안과 대기실에 앉은 사람들은 눈과 빛을 공유하고 있었다. 의사에게 내 눈의 불편을 호소하는 짧은 만남을 위해 기다린다. 돈이 많거나 적거나 직업이 귀하거나 천하거나 아랑곳없이 오직 내 눈에 집중해 모인 사람들이 가득 붐볐다. 젊은이가 보이지 않아 노인복지관에 들어선 착각이 든다. 어떤 이는 다리까지 절룩이며 들어오는데 인생살이에 치열했던 닳은 몸들을 마주치
새벽까지 빗소리를 들으며 선잠을 잤다. 붉은 벽돌 건물이 젖어 붉은 물이 흐르는지, 은행나무 열매가 떨어지며 노란 눈물을 흘리는지, 국민이 든 촛불이 살아있는지, 꽃 사과나무 아래 놓인 길고양이 밥그릇 빗물만 그득하게 고여 있는지, 아무것도 내일이 아니라고 복잡한 생각을 휘저으니 어느새 아침이다. 창가에 곱게 퍼지는 햇살이 간살스럽기도 하다, 밤새 물상을
얄팍한 김 조각 같은 허술했던 시간들이 비바람 풍상을 가슴에 안고, 뜨고 지는 해를 반복하여 수많은 밤들이 지나고 겹겹이 쌓이면 세월이 된다.그리고 또 얼마간의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유형, 무형의 기억을 흔적이라 불러보고 싶다. 자의든, 타의든, 남겨지든, 지워지든 흔적이란 본분의 유전자는 영원불변이라 생각한다. 문득 오롯한 허물을 벗어 나뭇가지에
배롱나무꽃이 저녁을 환히 밝히던 여름 끝 날이었다. 하루 해가 어두워지면 집 옆에 있는 동부공원을 돌아다니는 일이 숨 쉬는 듯 자연스런 운동이 되었다. 수돗가 근처에서 아이들이 모여 놀고 있다. “저기, 아줌마! 이 개의 주인이 되어보실래요?” 초등 사오학년쯤 되었을까, 머리카락이 단정하게 빛나는 남자아이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언제부턴가 거리를 혼자 돌아
차를 마시면서 가끔 조카와 대화를 나눈다. 잔잔하고 고요한 불교적 정서를 가진 조카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연꽃이 피어나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영문과 교수이면서 수업이 없는 날은 공부와 학교관련 업무에도 끊임없이 마음을 정진하는 미소 머금은 고요한 그녀 모습에 남을 흉보거나 미워하던 생각들이 훅 달아나버린다. 차를 우리면서 창으로 들어오는
고씨굴 입구에서 한여름 오후 냉기를 무임승차 한다. 전국이 폭염경보에 시름하던 날 영월 고씨굴 입구에서 냉 콩국수로 점심을 완성하고 동굴입구로 향했다. 피서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늘어선 틈을 헤치고 찬바람이 솔솔 불어 나오는 동굴입구 벤치에 무임승차하여 여유롭게 걸터앉아 거드름을 핀다. 동굴 입장을 하지 않으니 돈은 받지 않는다. 그래서 벤치 맨 가장자리
천일홍 꽃밭 한 가운데서 유모차에 누워 잠자는 아기는 한나절 엄마와 소풍 나왔나보다.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가을 정원이다. 일터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주일을 일하다가 오늘 하루 쉬는 날이다. 가을 햇볕과 서늘한 바람이 들어차 거리는 명랑하다. “지상에는 꽃, 하늘엔 별” 이라는 시 구절이 저절로 떠올라, 지금은 어디를 가도 꽃밭이다. 역 앞 광장에, 교차
가을볕이 맘껏 좋아 이불 홑청을 뜯어 빨아 널었다. 주홍색 바탕에 목단 꽃무늬가 있는 이 작은 이불은 사십 년이 다 되었다. 엄마가 병석에 계실 때 내게 유산처럼 물려주신 이불이다. 요즘 시대에는 드문 일이지만, 목화솜을 틀어 이불을 깁던 시절이 있었다. 아래는 하얀 홑청에 위에는 색과 무늬가 가 있는 고전의 단아한 이불이 있었다. 일인용 이불을 당신의 위
‘새로움을 잃어 버렸죠’라는 노랫말이 있다. 하루하루가 지나고 다시 찾아온 오늘을 맞으며 아름답고 의미 있는 사람살이에 대하여 무언가 조급해진다. 잠시 오는 순간의 행복한 감정을 오래 느끼고 싶은데, 희노애락(喜怒哀樂)을 관장하는 신은 힘겨운 일들과 나의 시간을 쇠똥구리처럼 굴려간다. 새로움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계절은 변화하고 삶이란 시계도 가을빛과 닮아
새들의 목소리가 바뀐 천등산 박달재를 넘는다. 여전히 구성진 노래 “울고 넘는 박달재”가 끊이지 않고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오래전 아날로그의 지글거림이 희박해진 느낌이다. 다만 노래의 주인이 바뀌었고, 풍이 바뀌었고, 곡조가 변하였지만 꿋꿋하게 한곡만 틀어주던 박달재 휴게소의 전통은 변함이 없었다. 영서와 영남사람들이 한양을 가기위해 반드시 넘어야만 했던
그녀는 한 때 텃새를 부리는 서너명의 직장동료들에게 시달림을 받았다. 나는 그녀보다 한 달을 먼저 입사해 직장 분위기를 파악하고 하이에나같은 더러운 인간상을 겪은 후라 지금은 관찰자로서 자리 잡기로 마음먹었다. 복희 언니는 단발머리에 마른형이다. 구부정한 자세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꾸밈을 가지지 않은 그 자체이다. 처음 현장에 들어오면 누구나 그렇듯 손이
의정부 고읍에 가면 나의 아기가 있다. 아들 내외가 그들만의 또 다른 휴가를 떠나면서 내게 한여름 무더위와 아기를 맡겼다. 장성한 아들은 점점 멀어져 가고, 작은 아기와 나만 의정부 한켠에서 이십여 일을 지내고 있다. 방금 첫돌이 지난, 작고 연약한 아기가 팔을 벌리면 듬뿍 안아주는 일, 지금 눈 맞추고 먹이고 씻기고 재우며 새삼 나와의 사랑도 익히고 있다
책상 한 구석에서 울어대던 전화벨소리보다 새소리가 교향곡인 곳 강원도 영월 장릉 뒤에 자리한 물 무리 골 삼림욕 길로 접어들면서 발바닥 감각을 최대한 곤두세우고 수행의 길을 걷는다. 무거웠던 머릿속 상념들이 증발한 탓인지 깃털 같은 체중이 계곡바람에도 방향을 바꿀 듯 가뿐하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둘레 길을 걸으며 이제 것 새 길을 개척 하듯 달려온 시간들
세교동은 세교상가1길부터 우편 취급소가 있는 5길로 형성된 작지만 아담한 동네이다. 이곳의 오랜 토박이로 살다보니 골목골목 무슨 음식점이 있고 미용실과 슈퍼와 치킨집과 커피숍이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지 한 눈에 상가지도가 그려진다. 상권 형성이 이뤄지면서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가는 음식점이 있는가 하면, 경영이 어려워져 문을 닫거나 신생 소도시로 이전하는 경우
7월 첫날 우리나라 홈플러스에서 전 직원 정규직 전환이 이루어졌다는 기사가 났다. “대형마트 체인 홈플러스(사장 임일순)가 무기 계약직 사원을 포함 1만 4283명을 정규직으로 1일 발령하였다. 전체 직원의 99% 가까이가 기존 정규직과 똑같은 승진 체계를 받고 조건 없는 정규직 전환이 이루어졌다”는 기사를 가뭄 속의 단비같이 시원하게 읽었다. 정규직으로
바람 부는 날이면 어느 시인은 압구정에 간다지만, 나는 가끔 헌책방을 찾는다. 초등학교 앞 지하에 오래된 헌책방이 있다. 소풍 나온 듯 들어가 바위틈과 나뭇가지에 숨겨진 보물 찾듯이 두리번거리며 뚫어지게 책장을 본다. 간간이 들려오는 7080음악이 반갑게 흐르고 책방주인의 편안한 미소가 있다. 어디서 이렇게들 왔는지 되는대로 어지럽게 쌓인 책더미들, 그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