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하루 사이에도 다양한 사고나 질병으로 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난다. 필자는 청년 시절 큰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경부고속도로에서 고속으로 달리던 우리 승용차가 우리 차를 못 보고 갑자기 저속으로 끼어든 트럭과 추돌하였다. ‘꽝!’하고 차끼리 부딪치는 굉음이 있고 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트럭 밑으로 차가 들어가 있었고, 조수석에
최근 별세하신 분의 추모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천안의 모 추모공원에 다녀왔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주변 외부에 설치된 납골 단들을 죽 살펴보았다. 많은 분의 납골이 함께 안치된 여러 단이 모여있었고, 한쪽에는 이 세상에서 꽤 명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한 분의 봉안묘가 따로 세워져 있었다. 돌로 대여섯 개의 층을 올려놓았는데, 그 각층에 몇 대, 몇 대 국
필자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전북 임실군 강진면 갈담리에 살았다. 그곳은 면 소재지였기에 평소에도 사람들이 제법 모이는 곳이었고, 장이 서는 날에는 주변 곳곳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였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음식점을 운영하셨다. 약간 경사진 도로를 따라 밑으로 내려가면 구구상회라는 가게가 있었다. 그곳 상점의 주인아저씨는 지금 자세한 기억은 없지만 참 좋
신약성경 빌립보서는 바울 사도가 유럽에 세워진 첫 교회인 빌립보교회에 보낸 편지이다. 바울은 빌립보지방의 성도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 기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빌 1: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이 기도는 먼저 우리의 사랑은 완성품이 아니라 점점 더 자라가고 풍성해지는 무엇임을 가르쳐준다. 땅에 심
“아니 왜 이게 여기 있지!!!???” 작년에 잃어버린 줄 알았던 지갑이 황당하게도 옷걸이 밑바닥 구석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지갑 안에는 현금 이십여 만원과 함께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에다 신용카드, 은행 보안카드, 가족사진, 그리고 모교 대학원 생활관 식권까지 그대로 다 있었다. 작년 늦은 밤 오랜만에 시내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는데 바지 뒷주머
어떤 아랍 사람이 사막에서 길을 잃었다. 가지고 있던 물과 식량이 다 떨어졌다. 그대로 있다가는 사막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몇 날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결사적으로 걸었다. 마침내 작은 샘터의 흔적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얼마 전에 누군가 천막을 쳤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는 혹시 먹을 것이라도 찾을 요량으로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마침내 그는 어
선물을 주고 싶다고?선물은 필요치 않아네 얼굴과 네 목소리와너의 웃음이나에겐 선물이야.너 자신이 나에겐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오직 하나뿐인 선물이야네가 그걸 알기나 하는지모르겠다. 딸 바보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이 자신의 어린 딸을 생각하며 지은 시이다.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존재만으로 큰 기쁨이고 큰 선물이었던 아기였을 적 자녀들에 대한 기억이 있다.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의 명언이다. 무지(無知)의 지(知), 즉 자신이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기를 촉구한 말이다. 당시 그리스에는 수사학이 발달했고, 스스로 지혜자를 자처했던 많은 소피스트는 자기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온갖 궤변을 일삼았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지식을 자랑하고 논쟁을 일삼는 그들에게 따끔한 일침인 셈이다
【올해는 빠른 추석을 맞았습니다. 이번에는 사정이 있어 추석 당일 내려오느라 마음이 바빴습니다. 그래도 바쁜 세상살이를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하다가 명절을 맞아 찾아뵐 수 있어서 너무 기쁩니다. 차도 막히고 힘든데 뭐 하러 오냐며 늘 자식 걱정이 먼저이지만, 이렇게 함께 할 수 있음이 얼마나 귀한지요. 구구절절 무엇을 말하지 않아도, 뭔가 특별한 일을 하
대추 한 알 - 장석주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저 안에 땡볕 두어 달,저 안에 초승달 몇 날. 붉고 둥근 대추 한 알에도 저마다 사연이 있다. 태풍과 천둥과 벼락을 이겨내고, 낮의 땡볕과 무서리 내리던 밤의 시간을 견디어
“가을이라 가을바람솔솔 불어오니푸른 잎은 붉은 치마 갈아입고서남쪽 나라 찾아가는제비 불러 모아봄이 오면 다시 오라부탁하누나” 가을을 불러오는 선선한 바람결에 우리 동요 중 ‘가을’의 노랫말이 생각났다. 계절은 어김없이 때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고 나타난다. 아직 푸른 잎이 붉은 치마를 갈아입을 때는 아니지만, 이제 서서히 여름은 가을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여
필자가 인천 어느 교회의 부목사로 재직했을 때의 일이다. 그 교회에는 회사 사장의 부인도 있었고, 알콜중독자 남편을 두고 하루 벌어 하루 먹기 바쁜 가난한 부인도 있었다. 하루는 가난한 여 성도가 필자를 찾아와 푸념을 늘어놓았다. 누구는 먹고 살려고 매일 아등바등 거리며 겨우 사는데, 누구는 명품 백에다 고급 자가용을 끌고 한가롭게 다닌다면서 그것이 상처가
몇 해 전, 당시 초등학교 5학년 이었던 둘째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했었다. 서울 고대 안암병원 바로 앞 대로에서였다. 우리는 횡단보도의 녹색신호가 점멸하고 있어서, 서둘러 가면 건널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도중에 신호가 빨간 불로 바뀌었다. 안되겠다 싶어 다시 돌아가자고 소리쳤지만 아이는 들은 체 하지 않고 마저 뛰어가면 될 줄 알고 더 빠르게 건너
다윗왕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었고, 시인이었고, 음악가였다. 그리고 평생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는 많은 시를 지었는데, 그중 시편에서 유일하게 관악기에 맞춰 부르게 되어 있는 시편 5편을 보면 평소 그의 기도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그는 먼저 하나님께 자신의 기도에 귀 기울여 주시고, 심정을 헤아려 주시기를 기도한다.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그야말로 뜨거운 여름이다. 한 낮의 폭염과 밤의 열대야를 이기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어디 피서라도 떠나면 좋겠다는 마음 한편에는, 휴가철 인파와 바가지 상혼에 고생할 바에 차라리 시원한 에어컨이 있는 곳이 피서지라는 생각도 있다. 이미 휴가를 갔다 온 사람은 일상에 잘 적응했으면 좋겠고, 휴가를 앞둔 분들은 개인적인 휴식과 재충전, 취미생활이나 색다른 경험
필자는 중고등학생 시절 아버지를 미워했다. 아니, 증오했다. 커서 아버지에게 복수하겠다고, 어른이 되면 늙은 아버지를 돌아보지도 않고 철저히 외면하겠다고 다짐하였다. 아버지는 시골에서 꽤 큰돈을 벌어 필자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도회지로 나오셨다. 아버지는 당시 유망하다는 사업들에 손을 대셨지만 하는 사업마다 실패로 돌아갔다.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업
성경에 나오는 비유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비유는 아마 ‘돌아온 탕자’에 대한 비유일 것이다(누가복음 15:11-32).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가 어차피 돌아가시면 주실 유산을 미리 나누어 달라고 떼를 쓴다. 그리고 그 재산을 받아 먼 타국에 가서 흥청망청 써버린다. 있는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끝내 알거지가 된 둘째 아들.
거의 30년 가까이 지난 일이지만 생생한 느낌으로 남아 있는 기억의 조각이 있다. 서울의 어느 회사에 갓 입사하여 한겨울에 거처를 마련해야 했다. 하숙도 여의치 않아 급하게 회사 가까운 곳에 단칸방을 얻었다. 매우 저렴한 월세 방이었는데, 길가에서 문을 열자마자 좁은 입구 겸 부엌, 그리고 작은 방 하나가 전부였다. 난방은 연탄 보일러였다. 나중에 알고 보
늘 반복된 생활이 지칠 때가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돈다는 말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을 매주 반복하지만 큰 변화는 없이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 같다.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로 고민하고 분주하게 움직인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새로운 선택보다 이미 선택한 것들에 매여 산다. 지나간 시간들은 아스라한 기억 속에, 뭐 그렇게 특별히 잊지 않기를 채근할만한
“이제껏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글의 제목은 얼마 전 서점에서 우연히 보게 된 책의 이름이다. 제목에서 풍기는 어감은 상대방이 나를 이익의 수단으로 사용한 것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이다. 우리는 세상을 사는 동안 수많은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가족이나 친구, 직장동료, 그리고 각종 모임과 공동체들에서 수많은 관계들이 파생된다. 나의 선택의 여지가 별로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