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주 전 지방 일정으로 갔던 통영과 거제에서 벚꽃 만개한 꽃길 터널을 지났다. 한 주 전에는 평택과 안성의 벚꽃 길을 걸어보기도 했다. 한 주가 지나자마자 벚꽃 사이 푸른 잎사귀들이 돋기 시작했고, 한낮엔 여름을 방불한 더위가 찾아와 봄이 이젠 끝나버린 것만 같았다.하지만 봄의 상징이 어디 벚꽃뿐이랴! 이젠 영산홍에 철쭉에다, 또한 튤립이 봄을 찾는 이들을 반긴다. 아무리 계절을 건너뛴다 한들 그렇게 야멸차게 도망가진 않을 것이다. 비가 제법 많이 내렸고 이제 제철에 맞는, 조금은 시원해진 봄바람을 기대해 본다. 봄은 꽃들과 함께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여러 증거를 조작하여 예수 그리스도에게 사형 판결을 내리고 로마제국의 총독 빌라도에게 그를 끌고 갔다(요한복음 18장). 빌라도 총독은 도대체 무슨 일로 새벽 댓바람부터 찾아와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고 물었다(요 18:29-30).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가 큰 중범죄자이기에 데려온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빌라도는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고발하는 이유가 시기와 질투에 눈이 멀어서 모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빌라도는 유대 지도자들에게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고 한다(요 18:31). 종교
이번 주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형벌 받으심을 기념하는 고난주간이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곱 마디 말씀이 있는데 보통 ‘가상칠언’(架上七言)이라고 부른다. 가상칠언의 첫 번째 말씀은 용서에 관한 것이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예수님이 가리킨 저들은 주위에 있던 구경꾼뿐만 아니라 십자가형에 연루된 로마인들과 유대 지도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하는지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몰랐다. 예수님은 그
요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기념하는 절기를 앞두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관련해서 성경에는 여러 가지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중 예수님의 수제자로 불렸던 베드로의 배신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베드로는 자타가 공인하는 예수님의 최측근이었다. 그런데 그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공개적으로 부인하였다. 심지어 만약 자기가 예수를 안다면 하나님께 저주를 받겠다는 맹세까지 해가면서 예수님과의 관련성을 부인하였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제자임이 틀림없었으며 예수를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달려 나와 무릎을 꿇었다. 예수님께 영생의 길을 물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막 10:17). 같은 사건을 기록한 마가복음 10장, 마태복음 19장과 누가복음 18장을 종합해 보면 이 사람은 젊은 청년이었고, 부자였고, 또 유대인의 관원이었다. 오늘로 말한다면 성공한 청년 사업가에다가 정계에 진출해서 국회의원 배지를 단 사람을 떠올려 볼 수 있겠다. 거기다가 그는 종교적 신앙심도 깊었다. 오랜 세월을 살아 인생의 단맛 쓴맛 다 보고 나이 지긋해져서, 이제는 죽음이라는 것
모든 일의 시작은 열쇠를 손에 쥐면서부터 그 효력이 발생 하는 것 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열쇠를 손에 쥐었다가는 버리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하고 또는 오래도록 지니고 다니기도 한다. 혹은 열쇠를 구하지 못하여 일의 실마리를 풀지 못 하는 경우도 허다했었다. 그런가 하면 예기치 않은 행운의 열쇠를 얻어 기적적으로 문제가 풀리기도 하는 것을 경험 한 적도 있다.그 어떠한 경우의 열쇠이든지 세상의 모든 일을 시작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열쇠이다. 물리적 기능을 지닌 열쇠 일 수도 있고, 마음속으로 다짐하여 난제를 해결 해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것이 지혜다. 세상살이에는 흑백논리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너무나 많다. 어떻게 판단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할지, 거절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함께 해야 할 때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오해가 있을 때는 어떻게 풀어야 할지 참 난감할 때가 있다. 되돌아보면 우리에게 후회되고 아쉬운 순간들도 많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 것에 대한 후회, 꼭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믿지 말아야 할 사람을 믿어버린 데 대한 후회, 꼭 붙잡아야 할 사람들을 떠나버린 것에 대한
주일 아침이면 가족들이 샤워 후에 사택 화장실에 있는 순간온수기의 온도 조절 레버를 저온으로 내려놓는다. 교회의 전체 전기 계약 용량이 작아서 온풍기에 방송시스템까지 쓰다 보면 혹시 주일 예배 중에 전기 과부하가 걸리지는 않을까 싶어서다. 월요일 아침 일찍 서울로 출근하기 위해 샤워기를 튼 순간 아차 싶었다.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다. 주일 아침에 늘 마지막으로 샤워하는 아들 녀석이 레버를 낮춰놓았다는 것을 깜박했다. 전날 밤에는 미지근한 물이 조금 남아 있었고, 간단히 씻고 자느라 미처 의식을 못 했다. 결국 온도 조절 레버를
지난주 어머니의 졸업식에 다녀왔다. 78세의 어머니가 졸업하신 학교는 ‘전북특별자치도립여성중고등학교’이다.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지 망설여지는 학교 이름이다. 제때 공부를 하지 못한 여성 만학도들을 모아놓고 가르치는 학교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 학교에 다니지 못하셨다. 가족들이 많았던 그때, 애나 보라면서 초등학교도 보내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는 나이 20에 결혼하실 때도 한글도 제대로 깨치지 못하셨다.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장남인 내가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돈 번다고 외지에 나가 계시고 어머니 혼자 어린 나를 건사하며 가난
몇 년 전 어느 소셜 네트워크에 올라온 글이 많은 사람의 감동과 공감을 자아낸 사연이 있다. 친하지 않은 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왔다는 이야기였다. 필자는 이글을 최근 우연히 보았다. 글의 내용은 이랬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한두 번 우연히 본 적이 있을 뿐 연락조차 안 하고 지내던 친구가 자기 결혼식에 와달라고 연락을 해왔다. 처음에는 완곡하게 거절 의사를 밝혔음에도 아주 간곡하고 끈질기게 부탁을 해와서 마지못해 결혼식에 참석했다.그런데 가서 보니 신부 측 하객 수에 비해 신랑 측 하객 수가 너무 적었다. 결혼식 후 친구가 너무나 고맙
2023년 12월 29일. 같은 날 교우 중 한 분은 생명의 위기를 넘기고 퇴원했고, 다른 한 분은 세상을 떠났다. K집사님과 L집사님이었다. 한 날에 생사가 엇갈렸다. 그날 퇴원하게 된 K집사님이 처음 병원에 내원했을 때 피 검사를 했는데, 결과를 본 의사는 칼륨 수치가 정상 수치보다 너무 낮아서 당장 생명이 위험할 정도라고 경고했다. 심장이 멈출 수도 있으니 곧바로 응급실로 가서 약을 투여하고 링거를 맞으라고 했다. 급하게 여러 검사를 진행하면서, 입원 절차를 밟는 과정 중에도 의료진은 계속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칼륨이 비정
어떤 부자에게 자기 재산을 도맡아서 관리해주는 청지기가 있었다. 그런데 청지기가 주인의 재산을 제 마음대로 한다는 소문이 들린다. 주인은 청지기를 불러서 추궁했다.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고, 결국 주인은 청지기를 해고하려고 했다. 장부를 정리하고 나가라는 것이다. 청지기는 과거에 행한 잘못으로 커다란 어려움에 직면했다. 그는 생각했다.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눅 16:3). 그는 이 위기의 순간에 지금 나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폭설이 내린 만뢰산을 올랐다. 자연 생태적 경관과 역사적 사건으로 다양한 등산로가 있는 해발895m 천안의 최고봉으로 알려진 명산이다. 임진왜란 때 중요한 싸움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만뢰산을 오르기 전 보탑사와 고려시대 건립된 비인 유적 연곡리 석비가 문화와 역사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을 준다. 인위적으로 결빙을 녹인 마을길과 도로는 눈의 흔적이 사라지고 잠시 주춤한 틈에 나무의 눈도 모두 햇살에 녹고 있었다. 미끄러운 오르막이 진행되는 산길이라 아주 천천히 고요한 풍경을 차창으로 바라보는 일도 신비롭다. 길이 깊어지면서 눈은 더
올 한 해를 대표할만한 기억에 나는 유행어가 둘 있다. 그중 하나는 “나 되게 신나!”라는 말이다. 작년 말부터 올 초에 이르기까지 큰 반향을 일으켰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 등장하는 대사다. 유행어 대사 한 마디에 드라마 속 주인공 문동은의 복수극이 축약되어 있다. 또 하나의 유행어는 “I am 신뢰”다. 올 하반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으로, 전직 펜싱 국가대표 선수 남현희의 연인으로 알려진 전청조의 사기극에 등장하는 말이다. 이 말은 참 많은 기업과 매체의 패러디를 양산해 냈다. “나 되게 신나”든, “I am
첫 번째 성탄절의 소식은 제일 먼저 들판에서 양을 돌보던 목자들에게 알려졌다. 그들이 들은 성탄 소식은 모든 인류에게 미칠 가장 기쁜 소식이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0-11).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아주 비상한 사건이었다. 만물의 창조주가 인간이 되시는 일, 전능한 절대자가 스스로를 비우고 제한 속에 들어온다는 것은 신비에 속한 일이요, 인간의 지혜로는 도저히
큰 고난을 겪고 있던 욥은 지금까지 의롭게 살려고 했던 자기의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자신에게 이런 큰 재난이 닥친 원인이 자기가 죄를 지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항변하며 내뱉은 욥의 말들은 역으로 고난을 주신 하나님이 불의하신 것처럼 되어버렸다. 자기가 옳다고 계속 주장하다보니 결국은 하나님보다 자기가 더 의로운 것처럼 된 것이다. 욥은 내가 죄를 짓지 않고 의롭게 살아간다고 한들 다 소용없는 일이라고 했다. 의롭게 살았음에도 이렇게 고난을 당한다면 범죄하는 삶보다 나을 게 없지 않느냐는 것이 욥의 항변이다(욥 35
구약성경 욥기는 우리에게 고난의 의미를 묻는다.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을 잃고 자식들마저 먼저 세상을 떠난 기가막힌 불행을 당한 욥에게 친구들은 말했다.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욥 4:7-8).친구들은, 죄 없는 사람은 절대 이 세상에서 고난당할 리가 없으며, 하나님 말씀대로만 산다면 복을 받고 살아간다는 단순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 즉, 욥에게 세 친구가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이것이다. “세상 모든 일들은 인과응보
논리학의 오류 중에 ‘후건 긍정의 오류’가 있다. 기호로 나타낸다면 이렇다. “①P이면 Q이다. ②Q이다. ③그러므로 P이다.” 언뜻 보면 맞는 말 같아 보지만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예를 들어보자. “①감기에 걸리면 기침이 나온다. ②기침이 나온다. ③그러므로 감기에 걸린 것이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 기침이 나온다고 모두가 감기가 원인일까? 그렇지 않다.감기가 아닌 다른 질병 때문에도 기침이 나올 수 있다. 결과가 같다고 모두 원인이 같다는 보장은 없다. 심각한 질병에 걸려서 기침이 나오는 데도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 보
당연한 내일은 없다오늘 안녕한 것은 당연하지 않다. 어제 별일 없었고 안녕했으니까 오늘도 당연히 안녕할거고 내일도 안녕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은 참 용감하다. 해마다 보험공단에서는 국민들에게 건강검진의 기회를 준다. 작년에 아무 문제없었으니 올해도 무사할 것이 보장된다면 해마다 반복해서 건강검진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매해 건강 검진하라는 연락이 연초부터 왔었다. 그런데 정작 검진을 받는 때는 연말이 닥쳐와서이다. 마치 방학을 맞은 아이가 방학 막바지에 가서야 바빠지는 것같다.
요한계시록에는 ‘흰 옷’을 입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이기는 자는 이와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 3:5).어떤 이단 사이비 종파들에서는 이 말씀들을 근거로 공식적인 집회뿐 아니라, 심지어 일상생활에서도 흰 옷을 입도록 강요하는 일도 있다. 이것은 성경의 본래 의미를 저버리고 문자적으로 지키려는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다.흰 옷은 요한계시록에서 여러 상징적인 이미지 중 가운데 하나이며, 성도의 현재와 미래의